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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도미노 대출중단' 쇼크

웅탈 2021. 8. 21. 20:44

 

 

"집값 올린 게 누군데…" 은행 창구엔 다급한 전화 빗발쳤다

느닷없는 '도미노 대출중단' 쇼크

금융당국 '돈줄 죄기'에 대출대란 현실화 우리銀, 9월까지 전세대출 제한…제일銀, 주담대 일부 중단  지역농협도 오피스텔담보대출 안하기로…실수요자 '발동동'

음성지원 서비스 듣기본문듣기기사입력 2021.08.20 17:42:34

농협은행에 이어 우리·SC제일은행 등 주요 은행이 줄줄이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면서 대출 수요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0일 서울의 한 우리은행 지점에서 직장인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허문찬 기자


농협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전격 중단한 데 이어 우리은행, SC제일은행 등도 신규 부동산담보 대출을 한시 중단했다. 농협상호금융(지역농협)은 다음주부터 신규 오피스텔 담보 대출과 아파트 집단 대출을 막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대출총량 가이드라인(대출 증가율 6% 한도)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정부 규제로 ‘대출 대란’이 발생하자 실수요자들은 “은행들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대출을 못하게 막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오는 9월 말까지 신규 전세대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3분기 전세대출 한도를 모두 소진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 19일 추가로 2000억원을 배정했지만 한 시간 만에 모두 소진돼 중단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SC제일은행은 대표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퍼스트홈론’ 중 신잔액 기준 코픽스 연계상품의 취급을 중단했다. 전세대출인 ‘퍼스트전세보증론’은 영업점장 전결 우대금리 혜택을 줄여 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신규 수요를 줄이기로 했다. 국민·신한·하나은행 등은 아직 별 조치를 하지 않고 있지만, 다른 은행의 대출 중단으로 인한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업계 얘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농협·우리은행 등에서 대출이 거절된 소비자들의 창구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며 “다른 은행 대출 수요가 급격히 옮겨올 수 있는 만큼 대출 증가세를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2금융권도 급격한 대출 증가세를 막기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지역농협은 23일부터 오피스텔 등 일부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제한하고, 아파트 집단대출 신규 승인도 중단하기로 했다.

금융사들의 연쇄적인 대출 중단은 향후 고강도 대출 규제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고승범 위원장 후보자의 취임 이후인 9월부터 추가 가계대출 규제를 내놓을 계획이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가계 부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출 억제책을 총망라할 것”이라며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보다 단기 상승세가 가파른 전세·집단대출에 대한 별도의 관리 대책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농협 이어 우리·SC제일銀까지…'대출 중단' 전방위 확산
지난달 가계빚 상당부분이 투기수요 아닌 전월세·생활자금

“정부의 은행 대출 총량 규제는 가계부채 대책으로 잘 포장된 부동산 대책이다.”(홍춘욱 EAR리서치 대표)

금융당국이 최근 대대적인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나서고 있는 데 대해 결과적으로 실수요자의 고통만 키울 뿐, 기대한 정책 효과가 달성되기 어려울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이나 전·월세 가격이 먼저 안정되지 않는 한 대출 수요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지 않은 탓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아무리 인위적으로 은행 문턱을 높인다 한들 실수요에 기반한 대출 수요를 모두 막기란 불가능한 만큼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을 재건축 규제 완화나 양도세 한시 인하 등 주택 공급을 늘리고 집값을 안정화시키는 쪽으로 유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집값 상승이 가계대출 증가 주범

2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의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연 10.0%로 전달(연 9.7%)보다 0.3%포인트 상승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올 하반기 가계대출 상승폭을 3~4%대로 억제해 연간으로 5~6%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강조해왔지만 이 같은 계획이 첫달부터 어그러지고 만 셈이다.


심지어 금융위가 지난 4월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핵심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7월부터 시행됐지만 대출 증가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DSR은 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즉 개인이 보유한 모든 금융권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의 40% 이내로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이 수치에 맞춰 대출 한도가 결정되다 보니 원하는 만큼 대출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다만 정부는 이 같은 규제를 도입하면서 실수요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전세자금대출, 예적금담보대출, 보험계약대출, 이주비·중도금 집단대출 등도 예외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문제는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세가 대부분 이 같은 예외적인 부문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 7조5000억원 늘어나 전달(6조4000억원) 대비 증가폭이 확대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택 신규 매매에 따른 주담대는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줄고 있지만 전세대출과 집단대출이 큰 폭으로 늘고 있어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의 고공행진이 대출 증가세의 핵심 요인이라는 평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종합 주택매매가격은 0.60% 올라 전월(0.49%)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전세가격 상승률도 0.49%로 전달(0.36%)보다 더 뛰었다. 투기적인 대출수요가 없더라도 집값 상승에 비례해 대출 총량이 가파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1인당 2억원이면 충분했던 전세자금대출이 지금은 최소 4억~5억원은 돼야 같은 위치, 같은 평형을 유지할 수 있다”며 “매매가 아닌 전세를 들어가는 데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 대출이 필요한데 총량 규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금융규제로 집값 잡겠다는 생각 버려야”

전문가들도 정부의 현 가계부채 정책 기조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춘욱 대표는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기 시작한 게 이미 10년 가까이 됐다”며 “지난해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71.5%(1분기 기준)까지 치솟긴 했지만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44.7%로 전년 동기보다 오히려 2.9%포인트 감소했다”고 말했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도 “대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당장 살 곳이 필요한 실수요자가 자금 마련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며 “금융당국의 총량 규제는 이 같은 실수요자의 금리 부담만 높이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이어 “정부가 되지도 않는 금융 규제를 통해 집값을 조절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부동산 시장에 매물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공급 대책으로 주택 가격부터 안정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